성경과 세상

포로 귀환

달무리지는 2011. 2. 24. 07:17

 

<바벨론 유수>

   

 

B.C. 609년 이집트에 바로 느고는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움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가 바벨론에 패함으로

 여호야김 왕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됩 

 

B.C. 601년 이집트의 느고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의 2차 전투

 친 이집트 파인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

 

B.C. 598년 제1차 바벨론 포로

- 유다 제18대 여호와김 왕과 다니엘 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다.

 

  

 

B.C. 597년 제2차 포로 (왕하 24:8-16)

 

- 여호야김왕이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에서 사망, 유다에 매장되었다

 

- 그 아들 유다 제19대 100일 천하의 여호야긴(여고냐)왕이 끌려 갔다

 

- 네오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나부코) 왕 8년

 

- (왕하 24:15-16)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유다 중산층 1만 여명을

 

- 에스겔 등이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

 

- 유다 제20대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바벨론이 왕으로 삼았다

 

 

   

B.C. 586년 제3차 포로 (렘 52:9-11)

 

- 유다 제20대 시드기야왕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시드기야왕 9년 10월 10일 ~ 11년 4월 9일까지 항전)

 

- 시드기야왕은 눈앞에서 아들들 죽음을 보고 두눈 뽑혀 끌려가서 죽었다

 

- [충격] 예루살렘 성과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었다

 

(느부갓네살 19년 5월 7일 - 혹은 10일)

 

- 유다의 가장 하층민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끌고 갔다

 

- B.C. 560년 12월 25일(27일)경 끌려간지 37년만에 여호야긴왕이 출옥했다

 

  

 

주전 539년, 고레스 대왕 바벨론 정복

주전 538년, 유대인 예루살렘 귀환 허가

 

주전 522년, 다리우스 1세 즉위 

 

주전 516년, 예루살렘 성전 준공

 

주전 514년, 사르데스까지 왕의 대로 개통

주전 490년, 1차 페르시아 전쟁, 마라톤 전투

 

주전 486년,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에스더 남편) 즉위    

주전 480년,  2차 페르시아 전쟁

 

주전 467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즉위 

 

주전 458년, 2차 포로 귀환(에스라 인도)

 

주전 434년, 3차 포로 귀환(느헤미야 인도)

 

 

주전 430년,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으로 독립 사마리아 교단 설립

 

주전 424년, 다리우스 2세 즉위

 

주전 336년, 알렉산더 20살에 왕에 즉위

 

주전 335년, 동방원정 시작

 

주전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승리

 

주전 333년, 이소스 전투에서 승리

 

주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

                수산성 입성

 

주전 326년, 마지막 인더스강의 히다스페스 전투

 

주전 323년 6월 10일, 33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바벨론에서 "보다 뛰어난 자에게" 말을 남기고 사망  

 

 

 

1차 포로귀환

 

1.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심으로 인하여 고레스 왕은 포로 되었던 유대 백성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킬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에스라 1장).

 

 

2.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약 5만명이 1차 귀환함. 고레스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포로 될 때 빼앗겼던 성전 기물과, 성전 재건에 필요한 물건과 재정을 지원했다(에스라 2장).

 

 

3. 포로 귀환 3개월 후 성전 재건을 위하여 각종 건축 자재들을 모았고, 포로 귀환 다음 해부터 본격적인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다(에스라 3장).

 

 

4. 성전 건축의 대역사를 시작할 무렵 우상과 여호와를 함께 섬기던 혼합주의자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성전을 건축하자고 제의해 왔으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려고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유대인들이 옛날에도 주변 강대국에게 항거한 적이 많았으니 성전 건축과 성읍 건설을 마치면 바사를 배신하여 조공과 세금을 바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 건축 금지를 명하였고, 사마리아인들은 횡포를 부려서 거의 14년 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말았다(에스라 4장).

 

 

5. 14년간이나 중단된 상태에서 두 명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일어나서 성전 건축을 속히 재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백성들을 모아 성전 재건의 역사를 감행했다. 이틀 본 유프라테스 강 서쪽 지방의 닷드내 총독이 스달보스내와 동료 관리들을 데리고 그들에게 와서, 누가 그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하였는지, 누가 공사 자재 준비를 마치라고 하였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노하셔서 바벨론 손에 넘겨졌으나 고레스왕을 감동시켜서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스달보내스는 다리오 왕에게 상황을 상소를 올려 상황을 보고 하면서 고레스가 성전 재건을 허락한 조서를 내렸다는 유대인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달라고 했다(에스라 5장).

 

 

6. 다리오 왕은 왕궁의 서류들을 조사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의 역사를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예산 중의 일부를 성전 건축 경비로 사용하게끔 하였다. 총독의 물질적 지원과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권면과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도력으로 인하여 신속하게 성전이 완공되었다. 성전이 완공된 후 유다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정월 십사일부터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다(에스라 6장).

 

 

 

 

2차 포로 귀환

 

7.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아닥사스다 왕 칠년, 즉 주전 458년에는 약 2천명의 포로의 2차 귀환이 이루어졌는데 이 2차 귀환의 지도자가 바로 에스라였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로서 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율법학자였다. 이때 귀환한 자들은 대부분 성직자들이었고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때 에스라는 중요한 결심을 했는데, 그것은 그가 율법을 연구하여 스스로 준행할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가르쳐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그러한 결심은 후에 느헤미야의 도움을 입어 성공적으로 현 실화 됩니다. 에스라의 이러한 결심은 참으로 귀한 것으로서 오늘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에스라 7장).

 

 

 

 

8. 성전이 완공된 상태였지만, 에스라가 2차 귀환했을 당시에 이스라엘은 부패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레위 사람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이방인들이 가져 온 우상들을 섬기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다(1-2절). (에스라 9장).

 

 

 

 

9.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아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였다(5-8절). 먼저,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아서 차분하게 범국민적인 동의를 얻어 가면서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에스라 10장).

 

 

 

 

3차 포로 귀환

 

 

 

 

10. 에스라가 사역을 시작한지 13년 만에 느헤미야가 3차로 귀환한다. 성전은 완공 되었고, 말씀의 부흥이 있었지만, 성벽은 아직도 재건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나님은 이 때 아닥 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이었던 느혜미야에게 성벽 재건의 사명을 주어 유대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귀환하도록 하셨다. 성벽 재건 과정에서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 공작이 있었다.

 

 

 

 

결론

 

1차는 성전 재건

 

2차는 말씀과 절기의 재건

 

3차는 성벽의 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