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피라미드, 아!

달무리지는 2012. 7. 11. 07:05

 

[허울뿐인 일자리 다단계 415만명] 한 푼이 간절해서 뛰지만, 다단계 하위 40%(수당 받는 판매원 중) '연봉 2만원'

입력 : 2012.07.11 03:02 조선일보

판매원 4분의 1만 수입… 평균 연봉 88만원 그쳐
불황일수록 판매원 수 늘어… 국민 10명 중 1명꼴
상위 1% 年수입도 5000만원 - "친구·친척 팔아 3등급 됐지만 月수입 200만원… 허망하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김미성(45)씨는 올해 초 한 다단계 업체 판매원으로 등록했다. '투잡(two job) 족'이 된 것이다. 동료에겐 알리지 않았다. 그는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보험 고객들을 대상으로 비타민제나 생활용품 구입을 넌지시 권유하고 있다. "얼굴 한번 보자"며 찾아가, 지나가는 말로 "그 비타민 먹어보니 좋던데요. 싸게 하나 연결시켜 드릴까요?" 식으로 영업을 했다. 그는 최근 몇 달 사이 10여건가량의 판매 실적을 올렸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다. 다단계 회사에서 받은 수당을 다 합쳐도 10만원을 조금 넘는다.

◇ 판매원 4명 중 3명 지난해 1원도 못 벌어

많은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다단계 업체의 문을 노크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0일 발표한 '다단계 판매업자의 정보공개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415만 다단계 판매원 가운데 단돈 1원이라도 수당을 받은 사람들은 전체의 25.5%에 불과했다. 4명 중 3명은 수당을 한 푼도 못 받은 것이다.

수당을 받은 사람들조차 지난해 1년 동안 지급받은 평균 수당이 88만8000원에 불과했다. 수당이 상위 1% 안에 드는 사람들도 평균 수령액이 5106만원에 그쳤고, 하위 40%는 겨우 2만1000원이었다. 용돈 수준도 안 되는 것이다.

수당의 양극화 현상은 상위 단계의 판매원들에게 수당이 분할 지급되는 구조에도 기인한다. 다단계 업체들은 최대 8단계까지의 피라미드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판매원들이 물건을 팔 때마다 가격의 35% 이내인 수당을 상위 단계 판매원과 나눠 가져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단계가 낮을수록 많은 사람과 수당을 나눠야 해 막 진입한 사람들은 열심히 해도 손에 쥐는 게 별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자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지난달 다단계 판매를 시작한 주부 조명순(43)씨는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 물건을 나름대로 많이 팔았는데 큰애 영어 학원비도 벌지 못했다"며 "업체 좋은 일만 시켜준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상위 단계로 이동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연성(26)씨는 재작년 대학을 졸업하고 1년 가까이 취업을 하지 못하다 지난해 초 다단계 판매사원이 됐다. "좋은 사무직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대학 선배 꼬임에 넘어갔는데, 실상을 안 후 처음엔 아차 싶었다. 하지만 취직이 안 되던 차라 '여기서라도 승부를 보자'는 심정에 지난 1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총 7단계 피라미드 구조에서 3등급까지 신분이 올라갔다. 하지만 현재 그의 소득은 월 2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이씨는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 신세를 져 가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정말 허망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늘어나

회사 물건을 본인 부담으로 떠안았다가 팔지 못해 큰 손실을 보거나, 회사가 폐업한 뒤 물건을 반품하지 못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공정위 관계자는 "매년 다단계 업체 중 20%가량이 문을 닫고, 다시 그 정도 수의 업체들이 신설된다"고 말했다.

다단계 업체 판매원 수는 관련 정보 공개가 시작된 2004년 405만명을 기록했다. 이후 '제이유네트워크' 등 불법 다단계 업체들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2005년 일부 업체가 정리돼 319만명으로 급감했고, 2008년까지 300만명대 초반을 유지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늘기 시작해 2011년에 400만명을 다시 돌파했다. 다단계 업체 판매원 수는 경기 사이클과 정확히 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불황형 고용'인 셈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잠깐 좋았던 2010년에 다단계 업체 판매원 수 증가율이 5.1%로 소강상태를 보였다는 것은 다단계 업체 판매원과 경기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