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대한민국의 두 극단 세력

달무리지는 2020. 9. 7. 07:33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면서 ‘문재인 하야’를 위해 청와대로 진격하자는 극단주의자 전광훈은 이 시대의 상식과 충돌했다. 코로나 방역 비상이 걸렸는데 광화문 집회를 주도했고, 본인을 포함한 신자 1000여 명이 확진됐다. 서기 2세기, 3세기에 역병이 로마를 강타했을 때 기독교는 목숨 걸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연대와 희생의 공동체였다. 변방의 종교가 세계 종교가 된 원동력이다. 1919년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인은 인구의 2%였다. 하지만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인이 기독교도였다. 방역을 방해하는 극단주의 세력은 기독교 역사의 오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떠한가. 제1 야당에 전광훈 목사의 극단주의가 독(毒)이었다면 문 대통령에겐 ‘문빠’가 운명적 극복 대상이다. ‘문빠’는 대통령의 언행이 빚어내는 일체의 상황과 반응에 맹렬하게 개입한다. 그 어떤 비판과 이론(異論)도 불경(不敬)이 된다. 공화국의 시민을 왕조의 신민(臣民)으로 격하시키는 ‘친위 쿠데타’가 이들의 일상이다. 집권세력의 어느 누구도 근위병의 삼엄한 감시망을 피하지 못한다. 입법· 사법·행정부도 이들의 편협한 세계관에 위축되고 있다. 이런 지경이라 국가 중대사가 치밀한 검토와 공론화 과정 없이 불쑥불쑥 추진된다. 23차례의 엉터리 부동산 대책으로 국민을 절망시키더니 코로나 비상 방역 와중에 느닷없이 의사 정원 확대를 들고 나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수가체계를 손보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라는 의료계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빠’는 대통령을 ‘무류(無謬)의 제왕’으로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대통령이 아끼는 조국을 비판하면 ‘적폐’, 반일 강경노선과 달리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고 하면 ‘토착왜구’로 낙인찍는다.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고 있다. 무조건 침묵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나를 욕해도 좋다”는 대통령의 말은 허언(虛言)이다. 대통령 위에 ‘문빠’ 극단주의가 있다. 1930년대 초 스웨덴 보수당은 히틀러를 지지한 스웨덴 민족주의 청년동맹을 제명했다. 당원 2만5000명이 탈당하면서 지방선거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극단주의 세력과의 거리두기 전략으로 반민주주의 세력의 등장을 저지할 수 있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에서 “주요 정당이 문지기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극단주의 세력을 고립시키고 억제할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민주당은 과연 ‘문빠’를 당해낼 수 있을까. 국민들은 극단주의 세력의 악행(惡行)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김종인이 버티고 있는 국민의힘은 전광훈 극단주의 세력을 정치적으로 축출했다. 문 대통령도 결심해야 한다. 동굴 안에서 손바닥만 한 시야로 저 넓은 세상을 훤히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문빠’들의 광신적 숭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인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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