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조직화된 무책임 - 코로나로 드러난

달무리지는 2022. 3. 19. 07:20

코로나가 연 판도라 상자… 부실한 재정·보건 정책이 드러났다

입력 2022.03.19 03:00
 
 
 
 
 

셧다운|애덤 투즈 지음|김부민 옮김|정승일 감수|아카넷|568쪽|2만9800원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은 그동안 보지 못한 기록을 남겼다. 2020년 상반기 전 세계 국가의 95%에서 1인당 GDP가 동시 감소했다.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16억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의 교육이 중단됐다. 각국은 경제불황을 감수하고 셧다운(폐쇄)을 실행했다. 셧다운과 거리 두기·백신 등 각종 조치에도 18일 기준 세계 코로나 사망자는 600만명을 넘겼다. 하지만 저자는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어떤 이유일까.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사학과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분석한 책 ‘붕괴’를 쓴 스타 경제사학자다. 그는 이번 책 ‘셧다운’에서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부터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까지를 시기별로 추적한다. 세계 각국이 드러낸 금융·보건·정치적 위기 징후를 포착해내며 “현상 유지는 우리가 택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선택지”라고 한다. 바뀌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파괴적인 위기가 찾아오리라는 우려다.

팬데믹은 과거 통용되던 ‘우파=작은 정부’라는 등식을 파괴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를 포함해 세계 각국은 2020년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우려되자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재난 보조금 지급에 나섰다. 감세와 재정균형에 초점을 맞췄던 미국 공화당 정부는 대대적인 현금 살포에 나섰다. 저자는 “2차 대전 당시 전시 경제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정부 개입이 세계 각국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벌어진 2020년 3월 피사의 사탑 인근에서 방역을 하고 있는 모습. 코로나 팬데믹은 18일까지 최소 6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자는 금융·정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 경고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경제 붕괴는 막아냈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2020년 미국의 가계 순자산은 15조달러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혜택이 상류층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개입은 미국 전체 주식의 약 40%를 소유한 상위 1%, 전체 주식의 84%를 소유한 상위 10%에 혜택을 줬다”고 한다. 그는 세계 경제 시스템의 필수 원칙이 된 ‘대마불사’는 부채를 연료로 삼은 투기로 뒷받침된다. 저자는 “풀린 돈은 기존의 불평등과 단단히 결합했다”며 “이러한 불평등을 흡수하거나 상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무능했던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초기 대처를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조직화된 무책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 결정권자는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을 책임지지 않고, 위험에 노출된 사람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조직화된 무책임이다. >

 

전문가 집단이 이미 수차례 예고했던 글로벌 감염병이었지만 관련한 공중보건 시스템 준비는 미비했다. 공중보건 위기에 맞서야 할 세계보건기구(WHO)는 종이호랑이였다.

그는 WHO를 ‘포템킨 마을’에 비유한다. 겉만 그럴싸한 껍데기라는 것이다. “WHO는 예산과 기부금을 모두 합쳐도 세계 인구 한 사람당 연간 30센트(약 400원) 이상 지출할 수 없다.”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 역시 ‘조직화된 무책임’의 사례다. 거리 두기 강화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진 자영업자,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로 감염이 폭증하면서 진료도 받지 못하고 각자도생하는 시민은 그 결과물이다.

게다가 무엇이 위험인지 합의조차 어려워졌다. 그는 “위험에 대처하려면 위험이 무엇인지 합의해야 한다. 합의를 하려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야 하는데, 그러면 논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과학을 불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불운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한다. 이 역시 바이러스가 얼마나 강력한지, 백신은 효과가 있는지를 두고 지난 2년간 무수히 관찰된 현상이다.

저자는 “과학과 기술의 혁신적인 잠재력을 받아들이고, 이 잠재력을 전 세계 차원에서 실제로 발휘하고 완전히 활용해야 한다”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2020년은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일련의 세계적 재난 가운데 첫 번째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경제 시스템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책은 2021년 9월 미국에서 나왔다. 오미크론 유행 이전이라 한국은 모범 방역 국가로 묘사된다. 그가 책에서 미국을 비판하기 위해 쓴 대목은 그래서 지금 한국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현대 국가의 토대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다. 2020년 코로나는 그저 독감일 뿐이라는 생각은 그 주장의 옹호자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