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돈에 관한 시 - 카르미나 부라나

달무리지는 2022. 12. 23. 16:03

요즘은 어디를 가나 유일한 지배자는 돈이라네.
  돈은 신사를 사랑하여 그의 하인인 것 같고,
  돈은 정부를 사랑하고 빈털터리 신세를 두려워하고,
  돈은 대수도원장과 탁발 수도사의 경배를 받고,
  돈은 검은 사제복을 입은 소수도원장 위에 군림하고,
  돈은 회의석상에 앉은 자들에게 충고하고,
  돈은 평화를 가져오지만, 마음만 먹으면 전쟁도 가져오고,
  돈은 분쟁을 일으키고 부를 파산시킬 수 있고,
  돈은 거지를 당장에 부자로 만들 수 있고,
  돈은 사고팔고, 자기가 준 것을 바로 되가져 오고,
  돈은 아첨꾼이지만 나중에는 배신자가 되고,
  돈은 항상 거짓말하고, 정직할 때가 매우 드물고,
  돈은 위증자를 건강하게도 아프게도 만들고,
  돈은 구두쇠들이 꿈꾸고 욕심쟁이들이 탐내고,
  돈은 거짓말쟁이 탕녀와 매춘부를 숙녀로 만들고,
  돈은 가난하고 헤픈 여자를 부유한 여왕으로 만든다네.
  돈은 심지어 용감한 기사를 강탈하는 야수로 만들고,
  돈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보다 많은 도적을 만들고,
  만약 돈이 재판을 받으면, 지는 일이 거의 없고,
  만약 돈이 재판에 이기면 판사조차 깊이 감동하여
  돈을 용서하고 부정 이득을 합리화해 준다네.
  그러나 돈은, 뻔뻔스러운 돈은, 죄를 부정하지 않아서
  대신 모든 참석자들이 당장에 보증인으로 나서지.
  만약 돈이 입을 열면, 가난한 자가 고통 받을 것이고,
  돈은 죽음을 가져오고 심지어 현자도 눈멀게 만들지.
  돈은 심지어 미치광이와 백치도 영리해 보이게 만들지.
  돈이 있으면 의사들이 오지만, 믿지 못할 친구들도 온다네.
  돈은 자기 식탁에선 푸짐한 진수성찬을 차리고,
  돈은 그대에게 진미와 잘 요리한 생선을 주고,
  돈은 프랑스 포도주와 훌륭한 외국 포도주를 마시지.
  돈은, 잘 차려입으면 그 무엇보다 빛나고,
  돈은 인도의 자랑인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다니지.
  돈은 사람들의 굽실거리는 등을 보기 좋아하지.
  돈은 모든 도시들을 헐뜯고 배반하지.
  돈은 숭배를 받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돈은 연지처럼 모든 결함을 감춰 버린다네.
  돈은 아무 용기 없는 자들에게 영예를 안겨 주고,
  돈은 감미롭고 소중한 모든 것을 시큼하게 만들고,
  돈은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불구자르 걷게 만들지.
  돈에 관해 나는 혼자 간직할 수 없는 것들을 기꺼이 말하리,
  돈이 종종 제단에서 찬양하는 것 같다고,
  돈이 혼자서 또는 합창으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돈이 설교하는 척하며 우는 것이 보인다고,
  그러나 그 가면 뒤에서 자기가 쓴 속임수를 비웃고 있다고,
  돈이 없다면 그 누구도 사랑받거나 순종받거나 명예롭지 못하지만,
  돈이 있으면 악마조차 편안함을 느낀다네.
  무엇보다, 어디를 가든 결국 다스리고 군림하는 건 돈이지.
  오직 지혜만이 돈에서 달아나 돈을 퇴색시킨다네.
 

- UMBERTO ECO의 "궁극의 리스트" 中에서 발췌



  
이 시를 읽다보면 돈이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은 권력과 명예와 존경, 우정, 건강조차도 살 수 있습니다. 심순애가 이수일을 배신하게 만든 것이 다이아 반지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조차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거꾸로 돈이 없다면 그 대부분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 시가 수록된 「카르미나 부라나」는 13세기경 독일의 수사들이 민간의 시를 모아 편찬한 것이라고 하니 물신숭배, 배금주의는 신이 지배하던 중세에도 있었나 봅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뻔뻔하게 돈을 숭배하고 있으며 돈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회에서 돈을 추종하지 않는다면 체제전복 세력으로 낙인찍힐 터이니 감히 돈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짓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우리 신도들이 부자가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를 해주시고 축복을 언명하시는 걸까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돈의 전지전능함 앞에 인간은 그저 미약한 노예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가슴 밑바닥 한구석에서 반감이 생길까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만은 거부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돈이 다스리는 세상에 살면서도 이율배반적인 소망을 가진 때문입니다. 그것은 돈이 정의가 되지 않고 돈의 논리가 공정함을 가장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여전히 돈의 논리에 정의와 공정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루쉰(魯迅)처럼 아직 돈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야 할까요? 그들을 구해야 할까요?
 
  돈이 없다면 그 누구도 사랑받거나 순종받거나 명예롭지 못하지만,
  돈이 있으면 악마조차 편안함을 느낀다네.
  무엇보다, 어디를 가든 결국 다스리고 군림하는 건 돈이지.
  오직 지혜만이 돈에서 달아나 돈을 퇴색시킨다네.
 
이 시의 마지막 행에는 그나마 모든 것을 다스리고 군림하는 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지혜"를 제시합니다. 지식은 타인에게서 빌리거나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지혜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지혜만이 악마조차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돈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삶의 지혜를 나누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가르치는 것이 어떨까요? 더불어 돈이 정의와 공정을 집어 삼키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사회를 보는 맑은 눈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카르미나부라나

#돈에관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