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학은 터툴리아누스의 말처럼 서로 적대적일 수 있다. 그 지향점이나 방법론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신학자들은 그리스 철학과 대적하고 경쟁만 한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희랍 철학을 수용하면서 기독교 신학을 발전시켜 갔다.
플라톤의 신, 데미우르고스
플라톤 후기 대화편에 속하는 '파르메니데스'와 '티마이오스'는 중세 신학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의 수 많은 대화편 중 두 작품이 관심을 끈 이유는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 때문이다. 초월의 세계(형상계)와 감각계에 대한 탐구를 담은 '파르메니데스'에 이어 신과 창조에 대한 탁월한 설명을 제시하는 '티마이오스'는 기독교인들에게 언어로 표현해 내기 어려웠던 신 개념을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해 내는데 큰 자극을 주었다.
특히 티마이오스에서 우주제작자인 데미우르고스의 창조는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다. 데미우르고스란 말은 제작자, 도공 등을 뜻하는 희랍어이다.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달리 무에서 유(creato ex nihil)를 창조하는 전지전능의 신은 아니다. 주어진 재료를 통해 형상계의 질서를 사물에 부여하는 제작자이다. 2세기 경 그리스 철학자들은 기독교 사상가들(교부)과 조우하게 된다. 플라톤 철학에 심취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빛이 있으라" 하시니 세상이 무로부터 창조 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창조는 2인칭을 향한 명령의 형태로 주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세상에 누구에게 명령하고 무슨 재료로 세상을 만들었는가? 초기 신학은 이처럼 그리스 철학과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정교해진다. 3세기 위대한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도 플라톤 철학, 정확히는 플로티누스가 해석한 플라톤을 접하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고 말한다.
부동의 동자
플라톤의 사상이 기독교와 비교적 잘 조응했던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많이 달랐다. 기독교가 공인 된 후 약 천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기독교 신학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형이상학' 등의 주제는 기독교 초월사상을 담아내기에는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플라톤의 형상이론이 지닌 초월성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자연법칙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또한 신을 운동의 제일원인이 되는 부동의 동자(the Unmoved mover)라고 정의함으로써 신을 포함한 모든 삼라만상을 자연법칙의 질서 아래로 환원시켜 버렸다.
플라톤의 세계는 이원론적이었다. 하나는 모든 것이 완전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초월적 형상으로서의 세계, 바로 이데아이다. 반면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늘 변화와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완전한 세상의 빈약한 모방에 불과한 불완전한 세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플라톤의 세계관을 거부한다. 이데아의 세계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물과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플라톤이 세상과 단절시킨 형상(이데아)처럼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형상은 각 개별 사물에 내재해 있고 이를 그 대상의 '본질'(essence)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사물의 고유한 질료가 결합하여 우리가 사물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물은 저세상 어딘가에 있는 '형상의 그림자'가 아니다.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실체이다. 물을 물로 만드는 성질, 액체로 흐르고, 빙점 이하로 내려가면 응고하며, 100도 이상 올라가면 수증기로 증발하는 성질 모두가 물이다. 물을 물 되게 하는 본질과 물의 여러 모양(액체, 얼음, 수증기)으로서 물(질료)은 따로 나눌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과 질료가 하나된 대상을 실체라고 했고 실체는 개체성(individuation)의 원리를 따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에 대한 정의를 통해 과학 탐구가 훨씬 수월해졌다. 저편 어딘가에 있는 이데아는 탐구의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본질과 질료가 결합한 개별 실체는 얼마든지 탐구의 대상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이런 이유로 17세기까지 서양에서 자주 인용되는 과학교재였다. 플라톤의 이원론을 따르는 후대 철학자들이 쉽게 관념론에 빠졌던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이 다원론적 경험주의로 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의 가장 최고의 단계는 선의 이데아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텔로스(목적)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 목적은 우주의 원인이요 변하지 않는 실체이다. 세상의 모든 운동은 원인과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운동의 과정을 역추적해 올라가면 마지막에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不動) 다른 모든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정한 신 개념이었다.
12세기 이전까지 중세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신의 세계 창조와 영혼불멸을 부정하기에 기독교 신앙에 해가 된다고 여겼다. 역설적으로 서유럽에 발을 붙이지 못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슬람 세계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당시 아랍은 우수한 그리스학자를 초빙해 많은 수의 저작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보존했다. 중세 이슬람에서 꽃이 핀 그리스 문화는 12세기부터 서유럽으로 역수입되었다. 다시 수입된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유럽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잘 묘사해 준 소설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이후로 가톨릭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에 큰 영향을 받은 반면 개신교 신학은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에 빚지고 있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의 위대한 점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변(플라톤)과 과학적 실증주의(아리스토텔레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자를 세상을 향한 구원과 진리의 빛인 성경을 기초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바울은 하나님 없는 모든 지식은 "천박한 초등학문"(갈 4:9)이요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빌 3:8)하다고 했다. 인문학은 본성상 인간 중심의 학문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복음으로 시대를 재해석한 믿음의 선배들의 '신학함'을 본받아야 할 시기이다.
박원빈목사 / 약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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