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대인 가문이 상하이를 ‘중국의 뉴욕’으로 만들었다
WSJ·블룸버그 출신 中 전문기자, 중국이 ‘치욕의 100년’이라 감춰온 1842~1949년 당시 상하이 조망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조너선 카우프만 지음|최파일 옮김|생각의힘|448쪽|2만2000원
1938년 11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탈출한 유대인 난민이 상하이에 입성한다. 처음에는 100명 남짓. 1939년 2월에 이르자 6000명 넘는 난민들이 상하이에 살게 되었고, 1939년 초봄에 이르자 1만명으로 불어난다. 1939년 8월 당시 상하이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 당국은 유대인을 상하이에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공표한다. 이때 상하이의 유대인 난민 수는 1만8000명을 기록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상하이로 파견된 나치 대령 요제프 마이징거는 유대인들을 배에 태워 몰살하자 제안하지만, 살려두어 인질로 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일본 대령 이누즈카의 만류로 목숨을 건지고 게토에 수용된다.
왜 이 유대인들은 머나먼 아시아의 도시를 망명지로 택했을까? 당시 상하이의 지배 권력이 중국 아닌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월스트리트 저널, 블룸버그 등에서 30년 가까이 중국 전문 기자로 일하며 2015년 퓰리처상을 받은 조너선 카우프만. 그는 상하이에 거점을 둔 두 유대인 억만장자 가문 ‘서순(Sassoon)’과 ‘커두리(Kadoorie)’의 흥망성쇠를 통해 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부터 공산당이 집권하는 1949년까지의 상하이를 들여다본다. 외국인 거주지인 국제 조계(租界)가 상하이의 중심이 되었던 이 시기를 중국 정부는 ‘치욕의 100년’이라 여기며 감춰 왔다. 그러나 저자는 상하이가 중국의 여타 도시와 다르게 근대화의 상징인 국제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치부로 여겼던 그 100년 덕이라 주장한다. 서순과 커두리가 서로 경쟁하며 상하이에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고, 화려하며 세련된 건물을 지어 유럽에 뒤지지 않는 스카이라인을 구축하며 상하이를 ‘중국의 뉴욕’이자 ‘로스앤젤레스’로 키워나갔던 것이다.

‘아시아의 로스차일드’로 불리던 명문가 서순과 바닥에서 시작해 서순과 대적할 만한 지위에 오른 커두리는 국민당 및 공산당 정권과의 합종연횡 전략으로 세를 불리고 부를 쌓는다. 장제스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 ‘비적들’과 싸우는 군대에 돈을 대기 위한 세금이 필요했고, 부동산 투자 사업을 하던 빅터 서순은 상하이로 자산을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혀 국민당으로부터 이득이 큰 사업을 약속받는다. 이러한 ‘제휴’ 덕에 대공황이 전 세계의 나머지 지역을 덮치는데도 빅터는 상하이에서 계속 돈을 벌었다. 상하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인 ‘평화(Peace) 호텔’의 전신 ‘캐세이 호텔’이 빅터의 작품. 빅터는 1929년 이 호텔을 “황푸 강에서 솟아오른 아르데코 우주선처럼” 와이탄 위에 우뚝 솟도록 건설한다. 저자는 이 시기 상하이의 번영을 이렇게 요약한다. “중국 근대화와 국민당 정권의 성공으로 가는 길은 와이탄을 따라 달렸다.”(193쪽)
저자는 우아하면서 정교한 글솜씨로 돈과 권력, 그를 둘러싼 욕망의 거래를 20세기 초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낸다. 개방적이고 다양하며 혁신을 끌어안는 상하이와 내부지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베이징의 차이점이,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세상을 향해 취하는 태도를 형성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에 묻는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원제 The Last Kings of Shang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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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동아일보
중국이 지우려 한 치욕의 역사
중동 출신 두 유대인 가문 재조명
상하이 경제발전 이끌었지만, 빈부격차 심화시키고 아편 퍼뜨려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조너선 카우프만 지음·최파일 옮김/448쪽·2만2000원·생각의힘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현대 중국을 만든 이’를 꼽으라면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상하이는 이들이 집권하기 전인 1930년대에도 미국 시카고와 뉴욕에 버금가는 스카이라인을 갖춘,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1895년 이미 영국 런던 수준의 전차 체계를 갖췄다. 세계의 기업가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상하이는 어떻게 50년 만에 대도시로 자리매김했을까.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중동 출신 유대 기업인 가문 ‘서순’과 ‘커두리’가 있었다.
근현대 중국 상하이에서 거대 기업을 일궜던 두 유대인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논픽션이다. 미국 보스턴글로브 등에서 30년 가까이 중국 특파원으로 일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풍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로 중국 공산당이 감춰왔던 역사의 모자이크를 복원한다.
중동의 유대인 지배계층으로 영국에 건너가 오늘날 우리 돈으로 약 3조 원에 이르는 부를 축적한 서순 가문은 중국으로서는 숨기고 싶은 기억이다. 중국에 아편을 판 돈으로 상하이의 부동산과 주식, 호텔, 회사에 투자해 서순 제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서순 가문 회사의 직원으로 시작해 상하이에서 호텔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커두리 가문도 탐탁지 않은 건 마찬가지. 이들 가문이 득세한 1842년부터 1949년까지 107년의 세월은 제국주의 국가가 중국에 세력을 뻗쳤던 ‘치욕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때문에 1949년 정권을 잡은 중국 공산당은 ‘제국주의 부역자’라며 재산을 몰수하고 이들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잊힌 역사를 추적하는 이 책의 미덕은 복잡다단했던 시대를 이분법적 시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 가문에 대해 “상하이에 기업가 정신을 들여왔지만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아편 무역으로 중국인의 삶을 망가트렸다”며 있는 그대로를 기록할 뿐이다. 저자는 두 가문이 남긴 명암을 훑으며 “성장과 발전뿐 아니라 불평등과 부패, 모순도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중국에 상하이 유전자(DNA)를 창조했다”며 이들의 유산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20세기 초 이들 가문이 주도한 자유무역과 기업가 정신을 보고 자란 상하이의 중국인들이 세계화를 꿈꾸게 됐다는 것이다.
1978년 문호를 개방한 중국이 경제 중심지로 상하이를 선택하고,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처럼 경제 수완이 좋았던 중국 지도자가 모두 상하이 출신인 이유도 이들이 남긴 기업가 DNA가 상하이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두 가문의 이름은 중국에서 희미해졌지만 기업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다. 커두리 가문은 1949년 공산주의를 피해 상하이를 떠나온 중국 출신 기업인들과 손잡고 홍콩에 정착했다. 여전히 홍콩 최대 전력회사 CLP홀딩스와 페닌슐라 호텔 체인을 경영하며 세계 경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홍콩을 세계 경제 무대로 이끌면서 아시아의 잠재력을 깨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처럼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가 뒤섞인 당대 상하이의 빛과 어둠이 모두 담겼다.
이소연 기자 alw 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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