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자유주의 - 우파는 교조주의 좌파는 비판주의로 위기

달무리지는 2023. 3. 11. 08:08

‘동네북’된 자유주의… 좌파건 우파건 관용이 사라졌다

‘역사의 종말’ 쓴 후쿠야마 신간
위협받는 자유주의 가치 옹호

입력 2023.03.11 03:00업데이트 2023.03.1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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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그 불만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이상원 옮김|아르테|264쪽|2만4000원

“자유주의 핵심 원칙이 우파와 좌파 모두에 의해 각각 극단으로 치우치게 됐다. 우파에서 오는 위협이 더욱 즉각적이고 정치적이다.”

우파는 자유주의(liberalism)를 극단적으로 교조화하며 망가트렸다. 좌파는 자유주의 비판 이론에 과몰입해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자유주의는 동네북이 됐다. 1989년 발표한 논문 ‘역사의 종말’로 스타 학자가 된 프랜시스 후쿠야마(71) 스탠퍼드대 교수가 다시 자유주의를 보호해야겠다며 나선 이유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유지될 것이라는 그의 논쟁적 주장은 아직까지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2021년까지 세계적으로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사실(프리덤하우스 연구)이다. 그는 “자유주의의 타당한 통찰은 교조화되면서 변질됐다”고 진단한다.

지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당시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미국 상원에 난입한 폭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세기 이후 세계에 번영을 가져다준 자유주의가 좌우 양쪽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는 먼저 고전적 자유주의를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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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헌법에 의해 정부의 권력이 제한되고 그러한 정부 아래에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내는 신조(doctrine)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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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율성은 최고의 가치다. 의사 표현, 결사, 믿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자유 재산권 역시 포함된다. 자유민주주의의 효과를 한국인은 잘 알고 있다. 그는 “1800년부터 현재까지 자유주의 세계에서 1인당 생산량은 거의 3000퍼센트 가까이 성장했다. 이런 이득을 경제적 계층 상층이나 하층에서 모두 느꼈다”며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긍정적 영향은 지난 수십 년간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아시아 국가 일본·한국·대만을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자유주의가 보장한 경제적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러나 그 결과 신자유주의는 전례 없던 지구적 불평등을 낳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파국을 맞았다. 후쿠야마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폭탄에 당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적 철학에 따라 진행됐던 민영화는 핵심적인 공공시설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독점 영역에도 막무가내로 적용됐다. 멕시코는 통신에 대한 정부 독점을 민간 영역의 독점으로 전환해 세계적 부호로 만들어줬다. 소비에트 경제의 핵심 사업을 러시아의 기득권 부유층(올리가르히)이 집어삼키게 한 것도 신자유주의였다. 불평등은 신자유주의의 기원이 된 자유주의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후쿠야마는 “그런 이유로 많은 참을성 없는 Z세대 운동가는 자유주의를 나이 든 베이비붐 세대가 지닌 시각으로 간주한다”고 꼬집는다.

우파가 교조화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낸 사이, 좌파는 자유주의의 특성인 ‘개인의 자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기존 체제와 파열음을 냈다. 인종, 성별, 동성 결혼 등 특정 정체성(identity)을 공유하는 이들이 기존 질서에 맞섰다. 그 과정에서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인 관용(tolerance)이 사라졌다고 한다. 특정 단어 한번 잘못 꺼냈다가 방송과 소셜미디어에서 추방당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좌파에 의해 관용이 사라진 자유주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극우(極右)가 이런 좌파의 정체성 정치 전략을 활용해 표 결집에 활용하면서 자유주의는 더 큰 위기에 놓였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이 대표적 사례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타락한 정부가 백인을 배척한다’고 주장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해법은 ‘절제’다. 자유주의 가치를 추구하되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자는 것이다. 심심한 결론이지만, 실리적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 “(좌우의 주장과 달리) 정부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의 질이다.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필요성을 회피할 길은 없다.” 그는 처칠의 유명한 말을 되풀이한다. “자유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존재하는 다른 정부 형태를 모두 제외하면 말이다. 원제 Liberalism and Its Dis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