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지에서

수긍 - '소명' 가운데 달려가는 자의 고백

달무리지는 2024. 10. 8. 01:49

“수긍” 

동기 목사님 은퇴식에 참석했다. 
아침 묵상 후 목사님을 위한 축가를 불려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라는 곡을 하모니카로 연습하면서 목사님을 생각했다. 
동기들이 모여서 은퇴예배를 준비했다. 
멀리 부산, 광주에서 그리고 울릉도에서도 용인까지 찾아왔다.
뉴질랜드와 캐나다에 있는 동기는 영상으로 동참했다.  
은퇴식에서 만난 동기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틋하다.
젊은 시절 만나 함께 운동하고 함께 신학을 하며 뒹굴었던 친구들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한 사람 한 사람씩 은퇴를 하고 있다. 

예배 시작과 함께 마음이 저려왔다. 
동기 목사의 기도를 들으며 신학교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먼저 은퇴한 동기 목사가 설교를 했다. 
목회하는 동안에는 성령에 붙들려 목회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은퇴 후가 더 자유롭게 성령에 붙들려 살 수 있음을 증거 하면서 
은퇴 후의 삶에 이런 복을 누리기를 선포했다. 
약력 소개를 들으면서 
그가 얼마나 고된 목회의 여정을 걸어왔는지를 회상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축사를 담당했다. 
평생 낮은 곳에서 섬김의 목회를 한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언젠가 그 열매가 맺힐 것을 기대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은퇴한 것을 축하하며
이어서 ‘은혜’라는 곡을 하모니카로 연주하며 축하했다.  

이제 답사의 순서다. 
평생의 목회를 돌아보며 은퇴의 자리에서 던져질 화두가 궁금했다.
은퇴하는 동기 목사님의 입에서 던져진 화두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는 잔잔하지만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 시작했다. 
“목회를 돌아보면서 내가 떠올린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혜’가 아닙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뭐지’?
그는 잠시 멈칫하다 울먹이며 이어서 한 마디 던졌다. 
그것은 ‘수긍’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목회의 길을 걷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드러나지 않을 때 느끼는 마음이 다가왔다. 

잠시 후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목회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말씀이 나의 생계를 유지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에 의지하여 
내게 주신 재능에 따라 찬양단을 만들어서 헌신하였습니다.
개척교회를 세워서 헌신했습니다.
수없이 도움과 사역의 기회를 구하는 공문도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사역의 문은 닫혀만 갔습니다. 
문이 열려지지 않았을 때 가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군인교회에서 10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갈망이 없는 이들에게 목회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의 정점에서 그의 고백은 ‘사랑’과 ‘은혜’가 아닌 수긍이었다. 
‘수긍, 인정’
하나님의 부르심을 수긍하고 인도하심을 수긍하면서 달려왔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손에 잡혀줘도 힘든 것이 목회의 여정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회에서 이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보여주시지 않았을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주시리라” 약속을 붙잡았는데
어떻게 목회하라고 하나님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침묵하고 계셨을까?
그렇게 하시고는 
목회의 종착점에서 ‘수긍’이라는 실로 놀라운 고백을 하게 하신 것일까?

‘수긍’은 우리 믿음의 고백의 최고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강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까?
목회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보여지지 않아도 
부르신 그 길을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수긍’이었다.
수많은 회의와 의심 가운데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후에
그분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대해 ‘수긍’한다는 믿음의 고백은 
나에게는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그분의 전지전능하심과 온전하심을 믿기에 
나를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을 ‘수긍’한다는 고백이기에 더 큰 울림이 되었다.
결과를 볼 권리까지 내려놓아야 했던 목회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수긍’이라는 이 고백을 읊조리다 찬송이 흘러나왔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그 찬양과 함께 조용히 기도했다.
“신실하신 하나님,
목사님의 남은 삶의 여정에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가득 차게 해 주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강물 속에서 헤엄치게 하소서
그에게 주신 달란트를 따라 마음껏 찬양하며 주님을 높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