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영학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사고(思考) 도구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다. 이 매트릭스는 할 일의 모든 목록을 4개 그룹으로 나눈다.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그것이다. 이 중 뒤의 2개는 부하에게 위임하거나(Delegate) 업무 목록에서 지워버리라(Delete)는 게 전문가들의 처방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핵심은 ‘급하고 중요한 일’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 또는 황금비율 결정에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리더가 전자보다 후자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 그 조직은 성공할 수 있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서 스스로 챙기지만,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한 조직 안에서 소명감과 책임감이 남다른 사람, 즉 리더가 아니면 아무도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7개월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놓고는 이것저것 많이 벌이는 것 같긴 한데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굵직한 국정 어젠다도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경계와 균형이 무너진 탓일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없다. 15일 TV로 점검회의 모습이 생중계된 120대 국정과제도 비근한 예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어떤 부분은 ‘수사(修辭)를 위한 수사’로만 읽힌다는 점이다. 연금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에 대해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는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는 안(案)만 만들고 실행은 다음 정부에 넘기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연금개혁은 안이나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3대 개혁과 저출산·고령화 해결의 확실한 단초만 마련해도 윤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대통령의 시간’을 집중 투자해야 할 일들이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은 끊임없이 밀려오기 때문에 적당히 덜어내지 않으면 ‘번 아웃(탈진)’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시간관리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의 이야기다. 탈진 상태가 가까워지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 도피처를 찾고, 결국은 실패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피하려면 윤 대통령의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장기 과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이 위임하고 더 많이 지워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보기에도 숨 막히는 ‘120대 국정과제 현황판’은 ‘책임총리’의 집무실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