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세상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아이젠하워의 주간고속도로 - 가장 기본이 길이다

달무리지는 2024. 9. 17. 05:36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아이젠하워의 주간고속도로

[노석조의 외설(外說)]
아이젠하워, 횡단 훈련 때 도로 부족 깨달아
2차 대전 땐 아우토반 경험
소련 핵공격 대비도 고려해 정책 추진

입력 2024.09.16. 12:05업데이트 2024.09.17.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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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미지 편집 노석조

추석 때 TV 뉴스를 보면 고향길에 오른 차들 장면이 나옵니다. 긴 고속도로가 차로 꽉 차 있습니다. 짜증 날 만도 한데 방송사 헬기가 지나가면 다들 차창을 내리고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듭니다. 아이들 입안에는 음식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추석·설날 등 명절 하면 좋은 쪽으로든 그 반대로든 누구나 떠올리는 것들이 있지요. 그 중 하나가 ‘고속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 시간 운행으로 ‘도로가 더 넓으면 안 되나’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한편으론 이런 고속도로를 일찌감치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국내 첫 고속도로는 1968년 완공된 경인고속도로와 1970년 경부고속도로입니다. 당시 ‘재정 파탄 나는 것 아니냐’ ‘그 돈으로 차라리 보조금을 늘려라’ ‘부유층 유람로 아니냐’, ‘딴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 등 여러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미래를 내다보고 돌파를 택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은 분명 ‘신의 한 수’였습니다. 당시 반대했던 사람도 지금은 그 결정이 맞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올해 정부가 심의·의결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보니, 작년 말 기준 국유재산 중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장부가액 11조9833억원의 경부고속도로였습니다. 부동의 1위입니다. 당시 총건설비는 km당 1억씩 총 429억원이었습니다. 50여년 만에 280배의 가치 상승이 이뤄졌습니다.

 

미 도로도 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탄생

미국 동부 북단과 남단을 잇는 95번 주간고속도로. /구글 지도

미 워싱턴 D.C.로 연수 와서 850마일(1368㎞) 떨어진 올랜도로 차를 몰고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경부·중부·호남 등 한국의 고속도로가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달리는 미국의 이 고속도로는 어떻게 계획되고 건설됐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도 고속도로가 참 잘 돼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미국 땅은 한국보다 98배나 넓은데 차로 못 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도로가 핏줄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워싱턴 지역에서 출발해 남쪽을 향해 직선거리로만 850마일 이상 종단하는데, 95번 주간고속도로(Interstate-95 Highway)만 타고 쭉 달리면 가능했습니다.

I-95는 미 동부의 북단(메인주 캐나다 국경)에서 남단(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을 이어주는 1923마일(3096㎞)의 종단 고속도로입니다. 매사추세츠, 뉴욕,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까지 포함해 총 9주를 관통합니다.

I-95 같은 기본(Primary) 주간고속도로는 총 70개가 있고, 이를 받쳐 주는 보조(auxiliary) 주간고속도로는 수백개에 달합니다. 총 길이는 4만8440마일(7만7960㎞)로 세계 최장입니다.

미국 전역을 잇는 주간고속도로. 기본(Primary) 주간고속도로는 총 70개가 있고, 이를 받쳐 주는 보조(auxiliary) 주간고속도로는 수백개에 달한다. /구글 지도

경인·경부 등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인데요. 미국 주간고속도로는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결단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5성 장군이자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 출신인 아이젠하워는 1953년 취임해 6·25전쟁 정전 협정을 마무리 짓고 그해 10월 이승만 대통령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물로 한국에 잘 알려졌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자국에선 1956년 미국의 경제와 사회에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주간고속도로 체계를 구축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로의 별칭도 ‘아이젠하워 주간도로’라고 합니다.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주간고속도로의 다른 이름은 아이젠하워 고속도로다.

이런 그의 명성과 국가적 평가가 과장은 아닐까 의심도 했는데요.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미술관(NPG)에 가보고 다들 인정하는 업적이 맞는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NPG 2층 대통령 전시실에는 역대 미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짧은 업적 설명이 있었는데요. 아이젠하워 업적은 3개로 정리됐습니다. 한국(6·25)전쟁 마무리, 아칸소 흑인 학생 차별 방지를 위한 연방군 배치 결단, 그리고 주간고속도로 체계 구축입니다.

군인 출신인 그가 어떻게 이런 정책을 품게 됐는지 리서치했습니다.

페어팩스 도서관과 조지타운대 도서관을 뒤져 ‘미국의 고속도로 : 미국 역사와 문화의 도로들(The American Highway: The History and Culture of Roads in the United States), ‘미국을 건설한 도로들 : 미 주간고속도로 체계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The Roads that Built America: The Incredible Story of the U.S. Interstate System)’, 그리고 ‘아이젠하워의 리더십: 아이크가 남긴 총체적 승리 관리의 영원한 교훈(Eisenhower on Leadership: Ike’s Enduring Lessons in Total Victory Management)’ 등의 자료를 살펴봤습니다.

 

①아우토반②핵 안보③미래 투자

아이젠하워의 리더십.

아이젠하워는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나치 독일과 싸웠습니다. 그는 연합군이 프랑스를 가로질러 독일로 진격하는 동안 독일군이 전쟁 전에 건설한 고속도로 시스템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회고록에서 “2차 세계대전 중에 나는 독일을 가로지르는 아우토반의 최상급 체계를 봤다”고 썼습니다.

그가 이끄는 연합군은 고속도로 덕을 많이 봤다고 합니다. 연합군은 아우토반을 통해 추격 병력을 빠르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연합군의 특별 보급대인 ‘레드볼 익스프레스(Red Ball Express)’는 연합군 공군의 선제 공습으로 폭파된 철로 대신 아우토반 등 유럽의 고속도로를 적극 활용해 아군에 보급품을 빠르게 공급했습니다. 1944년 8~9월 6000대의 트럭이 24시간 내내 이동했다고 합니다.

워싱턴 D.C. 국립초상화미술관 2층 미 대통령 전시실에 걸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초상화. /노석조 기자·조지타운대 방문연구원

군사 전략가이자 지휘관이던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면서 2차 세계 대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도 연방 정부가 관리하는 체계적인 주와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추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서독 방문 때 아우토반을 직접 보고 나서 한국에도 도시와 도시를 잇고 물류를 원활하게 하는 통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하지요. 이런 걸 보면 아우토반은 여러 나라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줬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지도자는 그걸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만요.